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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인권]미국서 온 덕성원 피해자 “후원자가 데려가면 다시 못 봐”

관리자 | 2024-04-23 | 조회수 : 40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참여차
30년 만에 피해자 부산서 모여
강제 해외입양·후원 모금 의혹
“국가가 나서서 진실 밝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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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를 받기 위해 미국에서 부산을 찾은 공 모 씨가 부산 동구 형제복지원사건 피해자종합지원센터에서 본보 취재진과 만났다. 이재찬 기자 chan@1960~1980년대 인권유린의 온상으로 알려진 아동 수용시설 ‘덕성원’(부산일보 2024년 2월 2일 자 11면 등 보도) 피해자들이 진실 규명을 위해 다시 부산을 찾았다. 진실을 알리겠다는 열망으로 미국에서 부산을 찾은 전 덕성원 원생을 비롯해 30년 만에 피해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용기를 내 세상에 나선 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지옥 같은 삶의 기억을 딛고 진실 규명을 촉구하기로 다짐했다.

22일 낮 12시 부산 동구 초량동 형제복지원사건 피해자종합지원센터. 〈부산일보〉 취재진은 이곳에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를 받기 위해 미국에서 부산을 찾은 공 모(38) 씨를 만났다.

공 씨는 덕성원에서 학대당한 마지막 세대다. 그는 “덕성원에 들어오기 전, 저와 오빠는 부산역에서 발견돼 다른 보육시설에서 지냈다고 들었다”며 “오빠가 덕성원으로 간 뒤 2년이 지난 1991년, 7살이었던 저는 갑자기 차에 태워져 덕성원으로 보내져 폐원되기 전까지 덕성원에서 생활했다”고 눈물을 흘렸다.

공 씨는 “초등학교 때 도움이 필요하다고 방으로 갔더니 설립자 서 모 씨가 침대에 누워 있었고, 노환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성기를 씻겨야 했다”며 “강제로 시킨 화장실 청소를 하다 깨진 벽돌에 손가락이 찢어졌는데 아무런 조치를 받지 못해 두 손 -손가락 길이가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중학생이 돼서는 생리대를 한 달에 한 개만 지급해 친구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빌려달라고 부탁해야 했다”며 “학교에서 돌아오면 깻잎 1000장을 따야 했으며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아 항상 감기에 걸려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덕성원에서 해외 입양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 씨는 “후원자라는 사람이 와 사진을 찍고 한 명씩 데려갔는데, 그렇게 나가면 다시는 볼 수 없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외로 입양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후원자에게 감사 편지도 썼는데 정작 직접 받은 돈은 단 한 푼도 없다”고 말했다.

공 씨를 포함한 피해자들은 이날 오후 6시 해운대구 중동 한 식당에서 본격적인 첫 모임을 가졌다. 각지에 흩어져 살아가던 피해자들은 생업을 끝내고 이곳을 찾아 30년 만에 서로를 마주했다. 피해자 대부분에게는 이날이 서로 얼굴을 확인하는 첫날이었다.

※기사 출처 아래링크)

https://n.news.naver.com/article/082/0001266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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