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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세이] 인권지도를 들고 나서는, 부산 인권역사 현장탐방

인권옹호팀 황숙정 | 2022-08-24 | 조회수 : 266

[에세이인권지도를 들고 나서는, 부산 인권역사 현장탐방

 

                                                                                                                                     인권옹호팀 황숙정

 

 

1. ‘인권의 눈으로 부산의 역사를 바라보다(?)

 

“2022년 인권특성화 사업으로 부산지역의 인권지도를 만들어 봅시다.”

네에?”

 

올해 1월 막 입사한 나에게 센터장님이 제안한 인권지도. 지도는 흔히 보는 것이지만, 이건 보통의 지도가 아니었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막막했던 나에게 주어진 키워드는 부산, 인권, 지도 세 단어이다. 세 단어를 앞뒤로 굴려보아도 물음표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지도의 사전적 의미는 지구 표면의 상태를 일정한 비율로 줄여, 이를 약속된 기호로 평면에 나타낸 그림을 말한다. 지도는 특정 지역을 약속에 따라 기호화하여 종이에 옮겨놓는 것이지만, 그 공간이 지니고 있는 특수성/시간성과 지도 제작의 목적에 따라 물리적 지표 이상의 의미를 담을 수 있다. 지도에 부산이라는 공간의 역사성과 지역성, 인권의 의미를 담아본다면?

 

인권의 눈으로 부산이라는 시공간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인권이란 무엇이고, 인권의 관점으로 부산을 바라본다면 기존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과는 어떤 차별성을 지닐까? 부산지역의 인권 현장, 인권역사에는 어떤 내용을 담을 수 있을까? 인권지도는 왜 만들고 또 어떤 쓸모와 가치를 지녀야할까? 이런 저런 물음들과 마주하게 된다.

 

인권은 인간이면 누구나 누리는 권리라고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현실의 일부분만 담고 있다. 누군가의 인권은 특혜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또 어떤 누군가의 인권은 주장하는 것조차 힘들기도 하다. 인권의 개념이 저러하다 할지라도 시간과 공간에 따라 인권의 범주가 달라지고, 인권은 늘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이렇듯 인권은 사회적 역사적 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정의내리고, 만들어가는 현재형의 개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한 활동/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 사건을 기록하고, 기억하여 부산인권역사를 인간의 권리를 확장해온 과정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부산지역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 또는 인권 실천/옹호 활동과 사건들을 발굴하여, 인간다운 삶을 위해 노력한 사람/사건을 기억하고자 한다. 인권지도는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일들을 사건화화여 인권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일이다. 부산의 역사를 인권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지도로 만든다면, 인권의 역사를 잊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그 의미를 새겨보며 오늘 우리들의 인간다운 삶을 디자인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2. 인권현장을 답사하다.

 

다소 구구절절하기도 한 저러한 기획의도에 따라 부산역사를 살펴보았다. 부산지역 인권의 역사로 독립운동가, 6.25 전쟁기 민간인 학살, 4.19혁명, 부마항쟁, 876월 항쟁 민주화 운동 등 시대적 흐름에 따라 살펴볼 수 있다면, 노동 인권, 여성 인권, 사회적 약자의 인권 등 분야별 인권 문제도 살펴볼 수 있다. 인권센터는 3년에 걸친 기획사업으로 테마별로 인권지도와 탐방로를 만들고자 한다.

 

인권지도를 만들기 위해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서 자신의 시대와 온몸으로 부딪히며 맞서고자 했던 사람과 그 사람들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 인권지도의 첫 번째 테마는 독립운동가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독립운동은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기 위한 활동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식민지 체제에 수탈당하고 인권을 유린당했던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저항한 활동이라는 점에서 인권역사라 할 수 있다. 부산지역 독립운동가들은 누가 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살펴보고자 하였고, 819일 이들의 발자취를 쫓아보는 인권현장 답사를 다녀왔다.

동구에 위치한 박재혁 테마거리를 방문했는데, 의열단인 박재혁 의사는 1920 부산경찰서에 고서적 상인으로 위장 잠입하여 폭탄을 던져 당시 부산경찰서 서장이었던 하시모토 서장에게 중상을 입힌 분이다. 부산 동구청은 독립운동가 박재혁 의사의 항일 호국정신을 기리고 기념하기 위해 범일동 KT 앞 사거리 조방로 약 630m 구간을 박재혁 거리로 조성하기로 했다. 하지만 직접 찾아간 현장에서는 박재혁 거리라는 도로 위의 이정표 하나와 표지만 조성되어 있는 박재혁 생가터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소중한 독립운동가의 역사를 홀대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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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부산지역 3.1운동의 진원지인 부산진일신여학교를 방문했다. 3.1운동은 일신여학교를 시작으로 부산 전체로 확산되었다. 부신진일신여학교는 최초의 신여성교육기관으로 항일독립운동의 주체인 여성들의 역사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1919311일 당시 일신여학교 교사 주경애·박시영과 학생 김응수·송명진·김순이·김난출·박정수·김반수 등 수백명이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다.” 근대 초기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학교 공간에 들어서니, 여학생들이 만세 시위를 하는 그날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100년이 지난 역사이지만 공간이 주는 현재성은 과거와 지금 여기를 이어주었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에게 기념할 역사와 공간이 필요함을 깨닫게 했다. 일신여학교에는 독립운동가의 벽이 세워져 있어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근처에서 순국당의 일원인 정오연 독립운동가 생가터도 만나볼 수 있었다. 유족분이 작은 슈퍼를 운영하면서 생가터를 관리하고 계셨는데, 선생과 관련한 자료를 직접 전달해주시기도 했다. 이어서 일본영사관 인근 평화의 소녀상, 민주공원 광복기념관, 조각공원 등에서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었다.

 

3. 인권 역사, ‘어떻게기억할 것인가?

 

잊혀진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떤역사를 기억하고 또 어떻게기억해야할까?

 

부산지역에는 6.25 전쟁기 민간인(국민보도연맹) 학살이 자행되었던 공간이 존재한다.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은 해방공간 극심한 이념대립으로 적대세력에 동조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국가가 자국민을 집단학살한 사건으로 국가폭력이자 인권유린사건이다. 어딘가에 매장을 했더라는 목격자들의 말은 소문처럼 무성하지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살피지 않은 탓에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는 사건이 되고 있다. 부산지역 사하구 신평동 동매산, 금정구 선동 동래 베네스트 골프장, 서구 암남동 혈청소 부근 해상, 부산 터널 위, 동삼동 미니공원 등지에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었지만,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고 해당 공간에 대한 설명이나 기념비조차 찾기 어렵다. 4.19직후 동래유족회 등이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하였으나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에 의해 동래유족회는 해체되었고, 진실 또한 묻히게 되었다.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의 조사가 있었으나, 부산지역에서 이 사건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움직임은 찾아보기 어렵다.

 

노동인권, 여성인권,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확장하기 위한 활동들도 마찬가지이다. 현장답사에서 동구 범일골목시장 누나의 길, 진양사거리 황금신발상 테마거리를 방문하였다. 1970-80년대 범일동 인근에는 국제고무, 삼화고무 등 신발공장이 많았는데, 신발공장에 출근하던 여공들이 걸었던 길을 누나의 길이라고 이름붙이고 그 길에 신발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담은 사진들을 전시해두었다. 길이 짧고 몇 개의 액자 밖에 없어 초라했지만, 당시 여성들의 삶에 대한 기록을 담은 현장이라 소중하고 찾아보기 힘든 기억공간이기에 인상 깊었다. 황금신발상 테마거리에도 부산지역여성단체들이 뜻을 모아 여성 노동자와 여성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한 작은 표지석을 세워 두었다. 부산지역에서도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인간다운 삶,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쟁취하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다. 70~80년대 노동환경은 매우 열악하였다. ‘구사운동이라는 미명 아래 상여금 반납’ ‘토요일 연장근무’ ‘30분 더 일하기등의 방법으로 노동착취가 자행되었고, 노동자들은 관리자들의 폭언과 욕설에 시달려야 했다.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이 있었지만, 우리는 노동자들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당시 노동자들의 삶과 현장을 담은 조형물이나 기념비, 기념 공간을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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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역사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과거의 기억들이 모두 잊혀지기 전에 우리가 그곳을 기억하고, 기억하기 위해 기념물을 조성하는 활동들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뚜렷해진다. 부산광역시인권센터는 지속사업으로 여성인권, 노동인권 등 테마별 시리즈 방식으로 인권 지도를 만들어나갈 예정이다. 이번 답사를 통해 독립운동을 비롯해 부산 지역의 소중한 인권 현장들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의 역사에서 어떤 것들을 발굴하고 기억해야 할지, 이를 기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한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인권지도 제작과 더불어 2023년에는 시민들과 함께 인권현장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앞으로 부산 지역의 인권 현장을 기억하고 모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조성하는 노력을 이어가고자 한다. 기억하고 참여하는 인권 역사 탐방은 오늘날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 나와 내 이웃의 인권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연대의 몸짓이기도 하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조언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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