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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세이] '아저씨, 왜 집에서 안 자요?' 를 읽고

인권옹호팀 황숙정 | 2022-10-26 | 조회수 : 274



그림책으로 보는 노숙인이야기

아저씨, 왜 집에서 안 자요?”


황숙정 (인권옹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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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저씨, 왜 집에서 안 자요? 1


 거리를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검은 수염이 가득한 아저씨가 벽에 기댄 채, 붉은색 이불을 덮고 앉아 있다. 그런 아저씨를 바라보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질문,

 

아저씨, 왜 집에서 안 자요?”

 

역사(驛舍) 뒤편에서, 공원 벤치에서, 지하철 대합실 구석에서 무수히 스쳐 지났지만 정작 한 번도 진지하게 던져보지 못한 질문.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 답하고 있다. 특히 아저씨, 왜 집에서 안 자요?는 아이들을 포함한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노숙인에 대해 알기 쉽고 친근하게 설명하고자 노력했는데 구성부터가 남다르다. 우선 책의 전반부에서 페터 아저씨가 어떻게 해서 노숙인이 되었는지 들려준 다음, 후반부에서 함부르크의 초등학생들이 노숙인들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스트리트 매거진 <힌츠 앤쿤츠트>(우리나라의 <빅이슈>처럼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발행되는 노숙인 잡지)의 판매원들이 답하는 구성을 취했다.

 

거리에서 노숙인을 만나면 일단 피하는 게 먼저다. 무섭고 지저분하고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젊잖게 의도적 무관심을 행사하거나 인상을 찌푸리며 돌아가는 게 다반사다. 노숙인이라고 하면 알코올중독자, 범죄자를 떠올리기 마련이고, 게으르고 태생적으로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일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속이 편하다. 어쩌면 처음부터, 태어날 때부터 노숙인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무기력과 나태, 혹은 참혹한 운명같은 것이 전염될까 두려운 우리는 동정과 비난, 연민과 환멸 사이를 위태롭게 줄타기 하며 서둘러 현장을 이탈한다. 물론 가난한 사람이든, 부유한 사람이든, 사람은 누구나 존엄하고 평등하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 혹은 시민이거나 국민이 아닌 탓에 앞서의 명제는 그저 공염불에 불과하다. 2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이들이 저런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는지, 또 어떤 이들이 직업이 있고 가족이 있고 집이 있는 평범하고 소중한 삶을 잃어버리게 되는지”(그림책, 22) 궁금하지 않은가. 최소한 나와 나의 가족, 내 자식이 저와 같은 삶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러나 책은 다르게 답한다.

예전엔 페터 아저씨 역시 아이였을 때가 있었습니다.” 덧붙여 오는 당연한 일이에요.”라는 문장이 눈길을 끈다. 지금은 노숙인이지만 그 역시 어린아이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게 당연하다는 문장은 그도 우리와 다름없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페터아저씨는 어린 시절 축구를 좋아하고 수학은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는 것이 많은 아이였다. 학교를 졸업한 후 직업훈련을 받았고 일이 익숙하기도 전에 지겨워졌지만 매일 일찍 일어나 일을 하러 갔다. 시몬느와 결혼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아이들과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또 가족들을 위해 매일 일찍 일어나 일을 하러 갔다. 그러나 시몬느에게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이혼하게 되고 페터 아저씨는 혼자 살게 되었다. 그리고 직장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페터 아저씨는 곧 다시 일을 하게 되었고 아이들과 정기적인 만남도 가졌다. 그러나 또다시 직장을 잃는 불행이 찾아왔다. 직장 상사는 페터가 일을 잘해주었다고 했지만, 회사는 많은 직원을 내보냈다. 3 아저씨는 다시 일을 구하고자 했지만,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청구서가 쌓이게 되고, 더 이상 집세를 낼 수 없어 집에서 쫓겨났고, 아이들과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페터 아저씨는 노숙인이 되었다. 백화점 앞에서 구걸하기도 하고, 공원에서 밤을 보내기도 했다. 누가 노숙인이 되는가, 어떤 요인에 의해 노숙인으로 전락하게 되는가? 우리는 노숙인을 개인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페터 아저씨는 그것 때문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페터 아저씨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와 같이 가정을 꾸리며 사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페터 아저씨의 실직과 가난은 개인적인 이유들, 게으름이나 노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회사의 구조조정 때문이다.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원인은 빈곤과 주택 문제이다. 빈곤은 저임금 일자리이나 구조적 실업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이며 이런 구조적인 모순과 개인의 요인들이 결합할 때 노숙으로 전락하게 된다. 노숙인은 불평등한 사회구조에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사회현상인 것이다.

 

우리는 페터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앞서 언급한 노숙인에 대해 가졌던 생각들이 편견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노숙인이 된 그의 사정은, ‘어떤사람들만의 특별한 불행이 아니라 누구에게나그러한 불행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저씨가 다시 일자리를 구했다면, 그는 밀린 청구서들을 다 처리할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일자리를 구하려면 집이 있어야 했습니다. 아저씨도 물론 그러고 싶었지만, 집세를 낼 돈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 그러려면 일자리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지금 같은 행색의 아저씨에게 집을 빌려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앞의 책, 20-21)

 

직장을 잃고 위기에 처했을 때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다시 일자리를 구하려면 집이 있어야 하고, 집이 있으려면 일자리가 있어야 하는 빈곤의 악순환. 인용한 부분은 한번 추락하게 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말해준다.

 

2. “발빠짐 주의, 발빠짐 주의

 

부산광역시인권센터가 위치하고 있는 연산역은 열차와 승강장 사이가 넓다. 역에서 내릴 때면 발이 빠질 수 있다는 주의 방송이 들려온다. 열차와 승강장 사이의 거리는 누군가의 발이 빠질 수 있을 만큼의 거리. 만약 발이 빠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한 순간의 실수로 발이 빠진다면, 발을 헛디뎌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실족사가 떠오르는 아찔한 순간이다. 위험의 순간, 발이 빠지게 된다면 그것은 개인의 부주의 탓일까. 아니면 열차와 승강장 사이에 위태로운 틈을 낸 부실공사, 혹은 예산부족의 결과일까. 연이어 들려오는 발빠짐 주의, 발빠짐 주의라는 방송은 그 모든 모순과 그로 인한 고통을 오롯이 개인들의 주의에 전가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져 속이 쓰리다. 안전을 충분히 보장해주지 않는 사회에서는 누구나에게나 발빠짐의 순간들이 찾아올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은 개인의 과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예견된 오류이며, 개인이 감수해야 할 불운이나 불행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져야할 안전시스템의 문제이지 않은가. 장기적으로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할지라도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간격을 없애는 일,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발빠짐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하거나, 설사 발이 빠졌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들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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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키르스텐 보이에?유타 바우어 지음, 니케북스, 2018

2) 노숙인(露宿人)은 상당한 기간 동안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노숙인은 특정한 상황을 가리키는 말임에도 우리는 노숙인을 특정한 신분처럼 여기고 대한다. 노숙인에 대한 이러한 관점이 낳은 비극이 바로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건인 형제복지원 사건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숙인은 단속의 대상이자 격리 수용의 대상이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사회통제적 부랑인 정책, 사회복지 및 치안 관계 법령, 내무부 훈령 제410, 부산시 부랑인 일시보호 위탁계약 등에 근거하여 발생한 사건이다. 내무부 훈령 제410조는 부랑인을 건전한 사회 질서 및 도시 질서를 저해하는 자, 사회에 나쁜 영향을 주는 자라고 정의하였고, 부랑인에 대해 신고, 단속, 수용, 보호하고 귀향조치 및 사후관리하여 도시 생활의 명랑화, 범법자 등 불순분자 활동을 봉쇄하는데 만전을 기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리하여 영장 없이도 부랑인들을 단속하고 시설에 수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내무부 훈령에 따르면 노숙인과 같은 의미로 쓰인 부랑인, 일정하게 사는 곳과 하는 일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은 도시 질서를 위해하는 사람이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죄자와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이렇게 노숙인은 도시 질서와 미화를 위해 있어서는 안되는 존재이자 청소의 대상이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자, 술을 먹고 배회하는 자들은 거리 정화를 이유로 형제복지원과 같은 사회복지시설로 끌려갔고 강제 노동과 폭력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영장 없이도 부랑인을 단속하고 시설에 수용할 수 있도록 했던 내무부 훈령 410조는 시민이나 아이들이 길에서 배회한다는 이유로 부랑인으로 취급하여 강제 수용하는 결과를 낳았다. 노숙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이처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차별의 논리이다. 따라서 사람이면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권의 보편성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3) 이 문장이야말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정리해고의 본질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생산성이나 개인의 업무역량, 노력의 정도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이윤극대화를 위한 산업구조 재편이나 경영전략 수정 과정에서 구조적으로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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