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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서울시 폭우로 드러난 재난 불평등_김정은

관리자 | 2022-09-23 | 조회수 : 94

서울시 폭우로 드러난 재난 불평등

 

부산시 인권센터 알림이 인절미단  김정은

 

 

나는 서울에 갈 기회가 별로 없다. 태어난 곳도 부산이고, 친구들도 부산에 살고, 다니는 학교도 부산대학교니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을 올릴 곳도 부산광역시 인권센터 사이트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부산 출신에 부산에서 대학 다니는 사람이 다른 지역에 자주 갈 일이 뭐가 있다고 타지의 대외활동을 하겠나, 부산에서 할 수 있는 걸 찾지.

 

하지만 가끔, 서울에 간다. 가끔이라고 말하면 친구들은 자주 가는 거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자기들은 1년에 다섯 번도 안 가는 서울을, 나는 한두 달에 한 번은 꼭 가니까. 이유는 바로연애 때문이다. 나는 서울-부산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고, 사귄 지는 300일이 조금 넘었다. 저번 8월달엔 멀어서 자주 못 보는 만큼 34일 정도 되는 긴 데이트를 서울 부근에서 하기로 했다. 나는 85일이 되어 김포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고, 8일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 사이, 재난 같은 폭우가 시작되었다.

 

88, 김포공항에서 김해공항으로 가는 비행기가 결항 됐다. 급히 다른 방법도 찾아봤지만 가능한 시간의 열차는 이미 매진이었다. 하는 수 없이 숙소를 하루 더 연장하고, 다음 날 낮의 KTX를 예매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해 하루종일 허둥거렸고, 실내에 들어가 SNS나 하게 되었다. 각종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도, SNS, 모두 서울에 엄청나게 쏟아지는 폭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강한 폭우에, 강과 하천은 범람하고, 지하철과 각종 상가, 주택들이 침수됐다. 최소 40kg가 넘는 맨홀 뚜껑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연이어 실종자가 생겼다.

 

집으로 갈 수 있을까? 다음 날에도 못 가게 되는 건 아닐까? 이쪽의 지하철도 침수돼서, KTX를 타러 가지 못하게 된다면?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 정도의 걱정은 당연할 만큼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것만 같았다. 차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무시하며 잠이 들었고, 걱정이 무색하게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었다. 안개만 가득할 뿐, 비라고는 전혀 오지 않는 익숙한 부산의 모습에 아까까지 머물던 서울의 모습은 마치 신기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해 푹 쉬게 되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보이는, SNS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전혀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아비규환과도 같았다. 계속되는 폭우에 지친 사람들, 폭우로 인해 망가진 거리의 모습. 사실 그건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었다. 서울에서 하루 동안 그 폭우를 겪으면서도, 정말 미쳤다싶었으니까. 20228월 중부지방의 폭우는 이례적이고 기록적인 폭우라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다들 예민하고, 무례하고, 안타까웠다. 이번 폭우가 단순한 피해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폭우가 불러온 참사는, 단순히 강의 범람과 상가 침수 정도에 그치지 않은,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서울시 폭우, 다들 그렇게 부른다. 서울에 많은 인구가 몰려 있는 만큼, 많은 인프라가 구축되어있는 만큼, 모두 서울에 집중한다. 인구가 밀집되어있는 정도에 비해 너무나 좁은 면적. 그 면적에만 비가 내렸을까? 중부지방에는 서울만 있는 게 아니다.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 강원도와 충청도까지. 경상북도의 북부까지 중부지방으로 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8월의 폭우는 중부지방 전역에 엄청난 양의 비를 쏟아냈고, 많은 물난리를 일으켰다. 강원도에서는 강이 범람해 부근에 살던 사람들이 실종되는 사태가 발생했고, 충청도에서는 유독 농작물에 대한 피해가 커 올해 농사를 아예 포기해버릴 정도에 이르렀다. 이뿐만이 아닌 전라북도에서도 인명피해가 생기고, 많은 사건 사고가 생겼지만, 아무도 모른다. 한국은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의 SNS에서도, 언론에서도,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죄다 서울공화국이다.

 

지역 불평등만 있을까? 불평등은 서울 속에서도 존재한다. 유독 확실하게 드러난 것이, ‘가난이다. 비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고, 많은 곳을 침수시켰다. 그렇다면 반지하는 어떨까? 바보 같은 질문이다. 1층도 침수되는 와중이니, 반지하는 당연히 침수될 테니까. 부유한 사람들은 아파트의 반지하에 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 부족한 사람들만이 반지하에 살 뿐이다. 지상에서 살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8월의 폭우에 직격타를 맞았다. 반지하의 창살 달린 창문 틈으로 쏟아지는 빗물, 흙탕물은 여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문밖에서도 물이 가득 차 열리지 않는 현관의 문손잡이를 마구잡이로 흔들고, 차오르는 물속에서 책상과 각종 물건 위에 올라서며 죽음의 두려움에 천장과 가까워지려 발버둥 친 사람들은 안타깝게 끝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반지하에서 온갖 기구로 창살을 부숴 간신히 탈출한 20대 남성의 이야기는 SNS에서 화제가 되었고, 반지하에서 함께 죽을 수밖에 없던 장애인 일가족의 이야기는 애도의 대상이 되었다. 시간이 조금 흘러, 사람들은 폭우의 위협 속에서 벗어났고, 직접적으로 크게 피해를 받은 사람들을 제외하곤 점차 폭우를 잊게 되었다.

 

폭우를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은 크게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말이, 참 입이 쓰다. 가난한 사람들, 소외당하는 사람들, 그들은 어째서 폭우를 잊을 수 없는 것일까? 재난은 왜 약자에게 가혹한 걸까? 안 그래도 팍팍한 삶 속에서, 자연현상마저 그들에게 불평등을 일으킨다. 재난 불평등이라는 말을 보고, ‘삶이 곧 재난이다.’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던 사회적 약자들의 말이 더 이상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자연재해는 곧 하늘의 재앙, 신이 내린 천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그럼 신은 왜 가난한 이들에게 더 야박하게 구는 것일까?

 

한강 의대생 사망사건에는 모두가 그리 오래 안타까워하면서, 왜 지방의, 또는 가난한 사람들의 죽음은 이렇게 쉽게 잊히는 걸까? 사람마다, 개인마다 가치가 다른 걸까? 같은 인간으로서, 마땅한 권리를 가지고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부당한 상황을 겪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한국을 덮친 여름의 재난은 약자들에게 가장 큰 시련을 안겨주고 떠났다. 수도에 사는 사람과, 지방에 사는 사람. 아파트 고층에 사는 사람과, 아파트 반지하에 사는 사람. 8월의 폭우는 그들 사이에 기묘한 기류를 흘렸고, 사람들은 분노했다. 언젠가 이런 현실이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을까? 사람들이 현실의 재난 불평등에 분노하다가 잊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문제의 근원은 무엇인지 등, 좀 더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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