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카드뉴스

home 알림 뉴스레터·카드뉴스
메뉴보기

[인권에세이] 한국 내 인종차별, 오리엔탈리즘과 인권의 가치

관리자 | 2022-10-28 | 조회수 : 99



한국 내 인종차별, 오리엔탈리즘과 인권의 가치

 

부산시 인권센터 알림이 인절미단 1기 김정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과거 유럽을 비롯한 서양이 자신의 영역, 세력을 넓히려 동양에 제국주의 지배의 손길을 뻗을 때,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개념으로 사용된 단어이다. 쉽게 말해서, 서양에 의해 만들어진 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 편견과 선입견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으로 볼 때 동양은 초라하고 열등하며, 서양은 우월하고 강하다. 인종차별이 과거에 비해 많이 옅어졌다고 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일부 유럽인에게 동양인은 미개하고 덜 진화된 부류이며, 중국인은 시끄럽고 일본인은 야비하고 한국인은 마늘 냄새가 난다.

 

전 지구적으로 세계화가 진행되며 서구의 많은 문물, 문화가 동양에 퍼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동양인들은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에 어떻게 대처할까? 이는 역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단어의 발생에서 알 수 있다. 역 오리엔탈리즘이란 서양인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동양인들이 내면화한 것으로, 동양인에 대해 말하는 서양인을 모방하듯 자신보다 하등하다고 생각하는 나라를 모욕하거나, 무의식적으로 백인에 대해 선망의 시선을 보내는 것에서 드러난다. 역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가진 사람들은 생각보다 매우 많다. 당장 주변의 한국인들만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내가 겪은 역 오리엔탈리즘 이야기, 한국의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때 반이 떠들썩해졌다. 새로운 전학생이 왔기 때문이다. 전학생은 우리와는 다른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새하얀 피부에 뺨에는 아주 살짝 주근깨가 내려앉아 있었고, ‘블론드라고 하는 찰랑이는 금발을 가진 긴 생머리의 여자애였다. 조금 말랐고, 눈동자는 파랬다. 대부분이 검은색 또는 갈색 계열의 머리와 눈 색을 가진 우리한테 그 아이는 금세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편의상 그 아이를 ‘A’라고 부르겠다.

 

A는 전형적인 백인 가정의 아이였다. 백인 어머니에 백인 아버지, 백인 남동생이 있었다. 부모님의 사업상 한국으로 오게 되었고, 말은 살짝 어눌했지만 대화하기엔 어렵지 않을 정도로 한국어를 구사했다. 들어보니 여기가 한국에서의 첫 학교는 아닌 것 같았다. 가정환경상 여러 학교를 돌아다녀야 해 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전까지는 잘 부탁한다는 내용의 인사를 마쳤다. 우리는 큰 소리로 박수를 쳤고, 풀 냄새가 가득한 시골의 한 초등학교에서 A는 큰 환영을 받았다.

 

A는 참 공주 같은 아이였다. 분홍색이든 노란색이든, 파스텔 계열 원피스를 입으면 대형마트에서 전시하는 인형 같았다. 굳이 원피스가 아니더라도, 흰 피부 덕분인지 잘 관리된 것 같은 금발의 머리카락 덕분인지 어떤 옷이든 잘 어울렸다. 한국 아이들 무리에서도 잘 어울렸다. 고학년이 된 초등학생들의 마음은 참 심란해서, 잘 놀다가도 잠시 무리를 벗어나면 뒷담을 하는 아이들이 생기곤 했다. 얘는 말하는 게 별로다,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든다. 초등학생들은 모두 순수하고 아무것도 모를 것 같지만, 남들보다 순수한 만큼 자기 마음에도 솔직해서 상처도 아무렇지 않게 잘 주는 나이대기에, 심한 말도 쉽게 입에 올리곤 했다. 하지만 A는 그 뒷담의 법칙에서 제외된 것 같았다. 무리에 있지 않아도 칭찬이 자자했고, 아이들은 A를 닮고 싶어 했다.

 

옆 반에는 ‘B’가 있었다. 5학년 때 전학 온 A와는 다르게, B는 초등학교 입학식 때부터 함께 했던 아이였다. A와 마찬가지로 편의상 B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B 또한 여자애로, 우리와 외형이 살짝 달랐다. 쌍꺼풀의 유무는 기억 안 나지만 눈이 매우 컸고, 부리부리한 인상이었다. 검은 눈동자에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살짝 까무잡잡한 피부의 이 아이는 어찌 보면 일반적인 한국인의 이미지도 섞여 있지만, 동남아시아 계열에 가까웠다. B는 한국인 아버지, 그리고 어느 나라인지는 모르겠지만 속칭 가난한 나라라고 하는 나라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B와는 같은 반이 된 적이 딱 한 번밖에 없었지만, 그 아이가 반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쟤네 아빠는 할아버지라며?’, 이런 말이 소문으로 돌았다. 한 날은 어떤 남자아이가 대놓고 B에게 질문을 했다. ‘너희 엄마 진짜 외국인이야?’ 그 아이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반 친구들 앞에서 창피를 주려는 목적으로 B에게 말을 걸었다. B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몇 초간 가만히 있다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 남자애는 무안했는지 괜히 큰 소리를 쳤고, B의 편을 들어주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너희 가족 진짜 다 외국인이야?’, A가 들은 질문이었다. B가 들은 질문과 비슷한 면이 있었지만, 둘 다 한 문장임에도 크게 차이가 났다. A는 아무렇지 않게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 이후의 시간은 평온하게 흘러갔다. 당연한 결과였다. 질문에도, 대답에도 악의가 없었으니. A가 있는 자리는 평화로웠다. 몇 년간 B가 해낼 수 없던 성취를, A는 우리 학교에 오자마자 이뤄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반 아이들의 A에 대한 흥미는 갈수록 차차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A의 존재감은 분명했고, 우월했다. 흰 피부와 푸른 눈동자, 금빛 머리칼은 여자아이들이 선망하는 대상이 되었고, 남자아이들이 함부로 장난칠 수 없는 대상이 되었다.

 

B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이렇게 질문할 것도 없다. 변화는 없었고, B는 묵묵히 자리를 지켜 졸업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우습게도 A는 학교에 처음 왔던 날에 말한 것처럼, 다른 학교로 전학 가고 말았다. 어떠한 말도 없었다. 방학 기간에 전학 절차를 밟았으니까. AB에게 있었던 일, 그 아이들을 둘러싼 한국 초등학생 아이들, 그건 그 학교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의 사상, 주변의 환경, 매체 속 영상 등으로 매우 다양하고, 아이들은 이 모든 것을 학습한다. 이 글 속의 초등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일 뿐이고, 여기서 일어난 일은 확장되고 심화해 사회 속에서 더 다양하게 일어난다. 한국 사회는 이미 역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내면화했다. 이 시선은 부모든, 아이에게든, 어느 세대에게든 영향을 미친다. 세계화로 인해 한국 사회뿐만이 아닌 어느 사회든지 이러한 인종차별적 시선을 바탕으로 깔아두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현실적으로 시선의 타파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최소한, 시선에 대한 고민이라도 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본 에세이는 인절미단의 활동으로 부산광역시 인권센터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첨부파일 | 첨부파일 없음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