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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의원 영어발언과 정보 접근권_이대희

관리자 | 2022-09-16 | 조회수 : 121

시의원 영어발언과 정보 접근권

 

부산광역시 인권센터 인절미단 이대희

 


한겨레 신문 보도에 따르면 지난 826일 부산시의회 박종철 시의원은 부산시의회 308회 임시회 1차 본회의에서 5분 자유발언을 했다. 그는 2030년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와 관련해 대한민국이 올림픽과 월드컵에 이어 3대 대형 행사인 2030년 세계박람회를 모두 개최하는 세계적 국가로 자리매김하기 되기 위해서는 국격에 맞는 영어상용 도시를 조성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말미에 정책제언을 할 때 서툰 영어로 해보겠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서 2030년 세계박람회 유치를 주제로 하는 초··고교생 영어 말하기 대회를 열고, 부산항 북항의 소방안전 대책을 확실히 세워달라는 내용의 발언을 영어로 진행했다. 발언을 영어 한 덕분에 회의록에도 박 의원의 발언 내용은 영어로 기록되어 있다.

 

한 의원의 발언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영어로 발언한 행위 자체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부산시의회에서 의원들이 하는 발언은 정책의 방향이 되고 부산시민들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 때문에 부산시민이라면 누구나 차별 없이 그 내용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의회에 대한 시민들의 견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이를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정보 접근성이다.

 

박 의원의 발언이 영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기록 역시 영어로만 되어있다. 영어를 읽을 수 없는 사람은 발언 내용을 알 수 없다. 선출된 의원의 발언 내용은 모든 시민들이 알 수 있어야 하고, 그 내용을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영어로 발언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없는 것일까? 현재 부산시의회 회의록이나 발언문은 모두 한국어로 기록되고 있다. 대부분 의원들이 한국어를 사용해 발언하기 때문에 한국어로 회의를 기록하는 일은 언뜻 보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한국어로기록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이는 시민들의 정보 접근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통계청 주민등록 통계에 따르면 20229월 기준 부산시에 등록된 외국인은 46,548명이다. 이 중 가장 많이 등록된 국가는 베트남으로 10,676, 그 다음으로 중국 6,720명이다. 미등록 이주민까지 고려한다면 더 많은 숫자의 외국인들이 부산시를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부산시의회나 부산시의 정책이나 조례에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시의회에서는 공식적으로 가장 많이 등록되어 있는 이주민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베트남어나 중국어로 번역된 회의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다. 최소 16,000여명에 달하는 시민들은 영어 발언이 있기 전부터 시의회 회의록을 읽을 수 없었다.

 

웹 브라우저가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번역 기능을 활용할 수도 있겠지만, 전문용어와 고유명사가 많이 등장하는 시의회 회의록 특성상 제대로 된 번역을 기대하기 어렵다. 당장 한국어를 사용하는 시민도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기 때문에 시의회에서는 용어 사전 기능을 따로 제공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어가 아닌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시의회와 관련된 정보에 전혀 접근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공적인 정보에 대한 접근을 제한받는 사람은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주민뿐일까. 점자를 사용하는 시각장애인이나 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도 정보 접근을 제한받는다.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앞서 언급한 영어 발언까지 갈 것도 없이 한국어로 발언하더라도 수어로 동시통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내용에 대해 알 수 없다. 점자를 사용하는 사람인 경우에도 시의회 회의록이나 자료를 점자로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이역시 접근이 제한된다. 현재 부산시에 등록된 시각 장애인은 17,564명에 이른다.

 

참정권은 우리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가치 중 하나다. 참정권은 단순히 투표하고, 공무원 시험을 칠 수 있는 권리로 그치지 않는다. 지자체의 정책이나 시정의 방향에 대해 비판하고 견제하는 일 역시 시민의 권리다. 이를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조례나 시정에 대한 정보 접근권.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 목소리도 낼 수 있고, 항의도 할 수 있다. 외국인, 장애인 등 소수자들의 정보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당사자들은 본인의 이해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도 없고 요구할 수도 없다. 참정권이 헌법에 명시된 권리라면 시의회에서 이루어지는 시의원의 발언과 내용을 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공받는 것은 배려나 시혜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다.

 

영어 발언 논란을 그저 시의회에서 의원이 영어로 발언한 이상한 사건으로 웃어 넘길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정보 접근권을 침해당하는 시민들의 권리 보장을 통해 실질적인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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