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속에서 자라난 존엄
김명수(부산광역시인권센터 위촉강사)
인권교육은 책 속 문장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강의실 문을 열자마자 맞이한 것은 숨결과 눈빛, 그리고 작은 몸짓들이었다.
말없이 앉아 있는 이들이 곧 교재였고, 그들의 존재가 수업의 첫 문장을 열었다.
자기소개 시간이 되자 모두가 차례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발화가 어려운 한 분은 끝내 목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옆에 있던 선생님이 대신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 순간 그의 눈빛은 어둠 속 등불처럼 환히 빛났다.
이름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세상 앞에 존재를 드러내는 첫 울림이었다.
그 장면은 교육의 문을 여는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다.
이후 한 선생님은 자기 이용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며 조용히 있었다.
그때 나는 전했다.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은 모든 것을 혼자 해내라는 뜻이 아니다.
스스로 하기 어려울 때, 곁에서 함께 도와주며 길을 열어주는 것까지 포함된다.
그 말이 전해진 뒤, 당사자는 서서히 손을 들기 시작했다.
작은 손짓이었지만 그 안에는 세상을 향한 커다란 용기가 담겨 있었다.
발표하고 싶다는 반복된 의지는, 새로 열린 문을 향해 내딛는 첫 걸음 같았다.
발달장애인은 살아가며 박수를 받을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어떤 시도에도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손바닥이 부딪히는 소리는 교실을 넘어 파도처럼 번졌고, 그 울림은 마음 깊숙이 스며들어 자존감을 세워주었다.
박수는 단순한 격려가 아니라, 스스로 삶의 주인임을 확인하게 하는 힘이었다.
그날의 교실은 웃음과 눈빛, 손짓이 어우러진 하나의 풍경화 같았다.
발화를 기다려주는 여유 속에서 존중이 피어났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순간마다 존엄이 빛났다.
강의안 속 문장보다 강렬했던 것은 환히 웃는 얼굴이었고, 어떤 설명보다 깊었던 것은 묵묵히 바라보던 눈빛이었다.
작은 몸짓 하나에도 박수가 이어졌고, 그 울림은 강의를 넘어 삶을 건네는 메시지가 되었다.
그 시간은 발달장애인을 위한 교육이 아니었다. 발달장애인과 함께 배우는 교육이었다.
내가 준비해 간 것은 강의였지만, 삶의 언어를 가르쳐 준 것은 오히려 그들이었다.
이름이 불리고, 손이 들리고, 박수가 이어진 순간들은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있다.
존엄은 멀리 있지 않았다.
늘 우리 곁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어 온 듯이.
* 부산광역시인권센터는 인권교육을 준비하는 인권강사의 고민과 인권교육 참여자의 목소리를 함께 나누고자, 인권강사 교육 후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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