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에세이

home 알림 인권에세이
메뉴보기

슈퍼우먼 말고 원더우먼!

서울시립대학교 인권센터 허은영 | 2022-03-08 | 조회수 : 439

슈퍼우먼 말고 원더우먼!

 

허은영(서울시립대학교 인권센터)

 

남자는 수학과 과학을 못한다.

남자는 감성적이라 큰 일에 적합하지 않다.

남자가 저렇게 높은 자리에 올라간 것은 틀림없이 뭔가 다른 게 있을 것이다.

남자로 태어나서 아깝다. 여자로 태어났으면 크게 되었을텐데.

 

다들 어떠신가요? 자연스럽고 익숙한가요?

이번엔 여자로 바꾸어볼까요?

 

여자는 수학과 과학을 못한다.

여자는 감성적이라 큰 일에 적합하지 않다.

여자가 저렇게 높은 자리에 올라간 것은 틀림없이 뭔가 다른 게 있을 것이다.

여자로 태어나서 아깝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크게 되었을텐데.

 

이번엔 자연스럽거나 익숙하신가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너무 자연스럽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부자연스럽게 들리는 이 표현, 생각들. 이것이 우리의 내면가부장의식입니다.

남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에게도 많은 부분 이러한 내면가부장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내가 특별히 보수적이고 전근대적이어서일까요? 아니면 원래 여자와 남자는 같지만 다른 인간이어서일까요?

 

근대 초기에 인류는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과학을 동원했는데 그 중 흑인의 뇌는 백인보다 작아서 열등하다거나, 여자는 남자의 뇌보다 작거나 가벼워서 열등하다는 가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표본 자체를 악의적으로 수집해서 흑인은 체구가 작은 사람들만 골라서 측정한다거나, 여성과 남성의 체구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문제제기를 받고 가설들이 사라졌습니다. 게다가 아인쉬타인의 뇌는 작은 체구와 작은 뇌, 그러나 주름이 많은 뇌를 가진 천재였지요. 뇌의 크기 우월주의에 따르면 열등한 아인쉬타인이 상대성이론과 많은 과학적 발전의 기여를 했고 전쟁반대 운동에 온힘을 다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여전히 작은 뇌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돌보고, 사회를 돌보고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 뒤로도 뇌의 부분기능에 성역할을 부여한 뇌과학이 수십년을 지배했죠. 남성의 뇌는 성적 욕구와 사고력이 활성화되어 있고 수학과 과학, 스포츠를 잘한다, 여성의 뇌는 수다스럽고 감정적이며 수학과 과학에 약하고 쇼핑을 잘한다는 식이었죠. 이 역시 여자와 남자의 뇌는 태어날 때 92%가 같고 8%의 차이만 있다는 최근 뇌과학을 등장시켰습니다. 성적 욕구와 사고 등의 차이가 아니라, 단지 남자는 스포츠를 여자는 언어능력에서 좀더 뛰어나다는 것이었죠. 뇌과학자들은 이처럼 남자와 여자의 뇌의 차이보다 대부분이 같지만, 사회환경 등에 따라 좀더 달라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성역할 규범과 성문화, 성위계적 사회제도들이겠지요.

 

우리 사회는 지금도 남자와 여자의 원초적 차이, 본능 등을 근거로 남성의 (성적) 폭력성을 이해해보려 합니다. 하지만 그 차이는 원래의 차이가 아닌 사회가 만들어낸 차별을 위한 차이일 수 있다면 우리의 역할은 오히려 사회가 차별하는 요인들을 찾아보고, 그 원인의 원인을 생각해보는 것이 아닐까요?

 

19451222일 서울 안국동에 아기를 안은 젊은 어머니, 할머니, 중년여성, 단발머리 여학생들이 강당에 꽉차게 모였습니다. 전국에서 모여든 여성들이 1천여명이나 되어 2일간 열릴 예정이던 조선부녀총동맹 결성식은 3일간 열렸습니다. 경제적 자주성 획득과 문맹 퇴치, 미신 타파, 일제 잔재 제거 등을 구호로 하여 사회적 편견을 타파하자고 외쳤습니다.

1927년에는 근우회가 결성되어 여성들이 스스로 해방하기 위해 모인 바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항일운동단체인 신간회의 자매조직이었습니다. 근우회는 이미 교육의 성차별 철폐와 조혼 폐지 및 결혼과 이혼의 자유, 농촌여성의 경제적 이익 옹호, 여성과 소년노동자의 노동안전 등을 강령으로 채택했습니다.

 

100년 전과 현재를 비교한다면 경제 문화 수준이 엄청나게 발전했다고 생각되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혼이 고민스럽고, 산전후휴직과 돌봄휴가를 내는 것이 어려운 직장이 많습니다. 실제로 남성들 조차, 육아휴직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어 사용하는 사람들이 생겼지만, 자신이 직장에서 잊혀지지 않도록 중간중간 회식이나 휴직중 직장 방문 등으로 얼굴 도장을 찍기도 한다는 연구가 있을 정도입니다.

 

최근 여성가족부 존재와 폐지 논쟁만이 선거에서 불붙은 가운데 올해의 여성의 날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최근 쟁점의 핵심은 역차별’, 여성 특권논쟁 같습니다. 여성의 특권을 인정할 것인가 여부를 생각해보자면, 여성의 특권은 과연 있을까요, 있다면 무엇이 특권이라는 것일까요?

조선시대 여성이었던 신사임당은 시댁과 의논하여 처댁에서 살았지만, 허난설헌은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시기나 미움을 받아 세상을 떠난 것을 본다면 동시대에도 많은 다른 여성들, 다른 삶들이 있었습니다.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하게 보장되어 있던 재산 상속권이나 제사를 자녀들이 돌아가면서 지내는 것 등은 고려, 조선 초중기까지 어느 정도 보장되었고,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기생여성에 대한 성폭력이라 할지라도 가해자를 중범죄자로 다스렸습니다. 하지만 점점 여성의 인격을 낮추고 여성의 인권을 남성의 인권보다 하위에 두는 방식으로 변해오다가, 현대 시대에조차, 성폭력이 발생하면 가해자도 나쁘지만, 피해자에게도 유발한 책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계속 갖게 되는 편견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성희롱, 성폭력, 가정폭력은 최근 80년대에 생긴 게 아니지만, 사회적 책무를 정하는 것은 80년대 후반, 90년대부터였습니다. 피해자들의 경험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고, 그것의 결과의 원인을 찾아보는 작업을 하게 되면서부터 여성의 공격, 반격여성의 분노의 원인을 찾아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베티 프리단은 이름을 알 수 없는/이름 붙일 수 없는 병을 여성들이 앓고 있기에 우울증, 홧병이 나타났다고 하며 여성을 차별하는 것에 문제제기 했습니다. 귀족과 왕의 사치가 도를 넘자, 보다 못한 상인들과 서민들이 혁명을 일으켰고, 이에 함께 했던 여성들은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고 외치는 혁명선언에서 배제되었습니다. 그 때의 사람성인, 비장애인, 남성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모든 여자 사람도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고 선언한 프랑스 여성 올랭 드 구즈는 단두대에서 처형당했습니다. 죄목은 여자답지 않아서였습니다.

과학기술혁명, 정보컴퓨터, AI혁명으로 사회는 급변해왔지만,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고, 남자는 남자다워야한다는 성역할 규범은 교육, 연애, 결혼과 가족구성, 노동 등에서 다양한 형태로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피해자를 구제할 때도 역할규범의 잣대를 대려 하지요. 그런데 생각해봅시다. 그동안 법제도의 이름과 목적, 시설과 관계, 환경들이 주로 누구를 기준으로 되었을까요? 여자와 어린이는 약하니까, 강한 남자, 성인이 보호해줘야 한다는 발상만으로는 평등과 평화를 구축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래윈 코넬은 남성성/에서 남성들도 하나의 동일한 부류로 규정하기 어렵다며 지배적 남성성, 주변부 남성성, 종속적 남성성 등으로 다양하게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단적으로 우리 사회에서도 힘과 관련이 있는 남성들도 있고, 노동자 남성들, 비정규직 남성들, 청년, 청소년남성, 장애청소년남성, 노년남성 등등 다양하게 교차하고 있지 않나요? 코넬은 이런 다양한 남성성을 강조하면서 이 사회는 가부장적 배당금이 주어진다는 것도 제기했습니다. 여전히 다양한 남성성/들의 아래 등급들로 다양한 여성성/들이 등급화되어 있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페미니즘의 시각이라는 것은 이처럼 누구나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들에 대해서 누군가 어떤 자격과 특권을 가지고, 기준을 정하고, 평가하고 등급화하여 그 등급을 근거로 차별하고 통제하는 것을 분석할 수 있는 질문과 생각의 방식이라는 점을 기억해본다면 우리가 좀더 이롭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많은 영웅을 배출한 미국이지만 단독주인공이었던 여자 영웅은 원더우먼과 캡틴마블 뿐이었습니다. 원더우먼은 영웅들이 출현하던 초기에 탄생하였고, 캡틴마블은 최근에 출현한 영웅이죠. 마스턴이라는 하버드대학 출신 남성이 탄생시킨 <원더우먼> 역시 처음엔 슈퍼맨 등이 히트치는 것을 보고 만들어낸 남자영웅이었습니다. 하지만 1세대 페미니스트였던 그의 연인의 제안으로 여자 영웅으로 전환해서 세상에 나왔던 것입니다. 여자들만 사는 세계인 아마조네스의 공주였던 다이애나가 인간세상에서 성희롱하는 남자회장이나 성차별적 발언을 하는 재판관을 혼내주거나 하는 에피소드들은 우리가 정의를 위해 어떤 사랑이 중요한가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급진적이란, 깊숙이 자리잡은 믿음과 행동을 뿌리뽑기 위해 그 토대를 철저히 검사하는 것’(스테퍼니 스탈, 빨래하는 페미니즘)이며 다르게 해석하는 것 자체가 세상을 변혁시키는 실천입니다. ‘개인이 겪는 고통은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르, ‘여성주의는 기존의 객관성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객관성을 부분화, 맥락화하자는 것’(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점을 한번 더 생각해 봅시다.

여성가족부의 존폐의 문제를 넘어서 여성성과 나이주의, 빈곤과 장애에 관한 어떤 차별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를 정부부처의 전담 역할로 논의해보는 건 어떨까요? 누군가를 자꾸 가르치려 들지 말고, 함께 고민하고 알아가고 나눠가는 사랑을 해보자구요.


사진출처: https://www.cbsnews.com/pictures/wonder-woman-through-the-years/32/

원더우먼.jpg

 



목록

| |
등록
※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는 댓글은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