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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이 없는 세상

사회복지연대 김경일 | 2022-01-26 | 조회수 : 593

이 글은 부산광역시 인권센터 뉴스레터 1호 인권에세이 칸에 실린, 사회복지연대 김경일 국장님의 글입니다. 


소중한 글 보내주신, 김경일 국장님에게 감사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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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이 없는 세상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이분들이야 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노회찬 의원의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연설 중 일부인 이 말은 6411번 버스 연설로도 잘 알려져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 고공농성, 쌍용자동차 사태, 용산 참사를 비롯해 우리사회에 많은 투명인간들이 존재한다고 말했던 2012년 그의 메아리가 2022년 지금에도 여전히 살아있음은 꽤나 애석한 일이다. 여전히 우리사회 곳곳에는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홈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고자 한다.

 

지난 20211224, 크리스마스이브에 부산지역의 노숙인종합지원센터 한곳에 코호트격리 명령이 떨어졌다. 하루전날인 23일 센터 이용자중 한명이 확진되었기 때문인데, 문제는 부적절한 공간에 공동격리를 시킨 것에서 시작되었다. 감염병예방법 시행규칙에는 감염의심자를 격리하기 위해 갖춰야할 시설의 요건을 명시하고 있다.

 

감염병예방법 시행규칙 제31조의3(감염병의심자 격리시설 지정 기준 등)를 보면 격리시설이 갖추어야할 조건은 다음과 같다. 독립된 건물로서 여러 개의 방으로 구획되어 있을 것, 구획된 각 방마다 샤워시설과 화장실이 모두 구비되어 있을 것, 음압병상을 보유한 의료법에 따른 의료기관에 근접하여, 감염병의심자의 이송이 가능한 거리에 위치할 것, 감염병의심자 격리시설의 규모는 해당 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도의 인구, 지리적 여건, 교통 등을 고려하여 정할 것.


관할 지자체의 역학조사관은 현장을 확인 하였음에도 부적절한 공간에 공동 격리 명령을 내린 것이다. 센터의 응급잠자리는 다수가 공동으로 취침하며 개별화된 샤워시설이나 화장실이 없는 곳이었다. 식사제공과 폐기물 처리 등 격리 상황에 따른 지원 방안없이 그야말로 대책없는 격리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법에서 요구하는 기준이 있는데도 말이다.

 

더 큰 문제는 홈리스를 비롯해 주거환경이 자가격리 요건에 충족되지 못하는 소위 주거취약계층이라 명명된 이들 모두가 격리할 수 있는 시설이 부산에 부존재하다는 사실이다. 감염병예방법에서는 시·도지사가 감염의심자를 격리하기 위한 시설을 지정해야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부산시장은 감염의심자 격리시설을 지정·운영하고 있지 않다. 출입국 관리, 항만 등에서 발견되는 외국인을 격리하기 위한 격리소만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감염병예방법 제39조의3(감염병의심자 격리시설 지정) 도지사는 감염병 발생 또는 유행 시 감염병의심자를 격리하기 위한 시설(이하 감염병의심자 격리시설이라 한다)을 지정하여야 한다. 다만, 의료법3조에 따른 의료기관은 감염병의심자 격리시설로 지정할 수 없다.


이에 사회복지연대는 국가인권위원회와 부산시 인권센터에 인권침해 사건으로 진정을 넣었으며, 지역의 시민사회도 공동연명으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4~5일의 공동생활 후 격리시설로 전원 되었지만 능동·수동감시자 34명중 14명이 확진되었다. 부적절한 공간에 격리되어 충분한 지원도 없이 방치된 결과는 결국 집단 감염으로 끝을 맺었다. 법에 명시된 격리시설을 부산시가 운영했더라면, 지자체 역학 조사관이 격리 조건이 충분한 시설로 격리명령을 내렸더라면 감염되지 않았을 사람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야말로 부산시 방역의 사각지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감염병 대응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코로나19 대응의 3년차에 접어들며 우리사회가 깨우친 큰 교훈 중 하나는 감염병 유행상황에서는 단 한명이라도 안전하지 못하면 공동체 모두의 건강이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동안 외면해왔고, 차별과 배재해왔던 것들도 감염병 앞에선 다 무의미해진다. 존재하지만 우리가 존재를 느끼지 못했던 투명인간들이 사회안전망의 중심이 되는 것이 결국 감염병 대응의 가장 첫 출발선이어야 한다.

 

우리사회가 구축해온 사회보장의 영역에 배제된 이들부터 포용하자.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도록, 노동이 착취당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주거요건에서는 생활 할 수 있도록더 이상 투명인간들이 우리사회라는 성벽 밖에 서성이도록 두지 말자. 백신을 앞으로 얼마나 더 맞아야 할지 마스크는 언제 벗을 수 있을지 상상하는 일보다 우리에게 중요한건 더 이상 감염병 대응상황에서 투명인간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는 윤동주 시인의 말처럼 고작 할 수 있는게 글을 끄적이는 것 뿐이라 필자 본인도 부끄럽지만,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투명인간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더는 부끄럽지 않기위해 투명인간이 없는 세상을 꿈꾸려고 한다. 함께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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