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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 기자회견장에서

인권옹호팀 양성민 | 2022-01-24 | 조회수 : 618



지난 2022120, 학생의 인권을 살피는 조례안이 나왔다하여 반가운 맘으로 부산시청 앞 기자회견에 참석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안이 부산시의회의 의안 검토에 들어간다는데 더러는 기대하는 맘으로, 더러는 혹시나 이 인권조례안이 형식뿐인 껍데기 조례안으로 전락하진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시청앞으로 갔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하나 세어보진 못했지만 얼추 오십여명은 훌쩍 넘은 숫자였던 것 같습니다.

 

교사 단체, 교직원 단체, 학부모 단체에서 온 사람들이 보였고, 무엇보다 여러 청소년 단체에서 많이 참가하였는지 젊은 학생들이 가득한 모습이었습니다. 더러는 현수막을 펼치고, 더러는 피켓에 깨알같은 글을 써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희망을 표현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인권조례안이 잘. 멀쩡하게. 저 의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부산시민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기자 회견문 낭독도 있었고, 여러 활동가들의 연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켓을 들고 있는 저는 연설에 귀를 귀울이지 않고 자꾸 옛날기억들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찬바람 부는 겨울 부산시청 기자회견장에서, 겨우 얼굴정도 데워주는 따스한 햇빛을 멍하니 받고 있자니, 중학교 까까머리 시절의 기억들이 짜꾸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까까머리 중학교 시절 저는,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딱히 불량스럽지도 않은 그리고 성적도 괜찮은 학동이었습니다. 요즘 위세등등한 전교 1등이라거나 전국1% 뭐 그런건 아니었습니다만, 그래도 없는 집 애들치고는 제법 시험성적이 준수한 편이었죠. 요즘도 가끔 자랑하곤 하는데, 내가 1등은 아니었지만 우리 동네 없는 집 애들 중에서는 1등이었다고 말이죠. 누군가 없는 집의 기준이 뭐냐 따지면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만 대충 그랬다 정도로 치기로 하고.

  

당시 다니던 중학교에는 주초고사라는게 있었습니다. 매주 국영수 세과목을 월요일마다 시험을 봤었습니다. 평일엔 학교라는 감옥에 갇히고 주말엔 시험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대충 살아가던, 숭악하기 그지 없던 유년인데, 그래도 요즘 아이들이 겪고 있는 무한경쟁에 비한다면 차라리 나았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어쨌든 주초고사 등등에서 성적이 괜찮게 나오던 터에, 담임 선생님께서 고맙겠도 당시 학교에 한명을 추천하는 부산시 장학생으로 추천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범일동 민주노총 부산본부 옆에 있는 부산시민회관 건물에서 당시 부산시장한테 상장도 받고 장학금 26만원인가를 받아 왔습니다. 정확한 금액이 기억이 가물한데 어쨌든 90년인지 91년인지 당시엔 꽤 큰돈이었던 것으로, 운동화 공장에 다니시던 어머니의 한달 급여정도는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상장과 거액을 들고 기쁜 마음으로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교무실로 가서 장학생으로 추천해주신 담임 선생님께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상장은 다음주 전교 조회에서 교장선생님이 한번 더 수상식을 해야하니 도로 내어 드렸고

상금은 오늘 가져 가면 된다고 하시면서


어라? 담임 선생님이 봉투에서 11만원을 꺼내어서 자기 주머니에 넣습니다.

 

야 내가 추천했으니, 나누자그럽니다.

 

없는 집 애들 열심히 공부하라고 지급한 장학금을, 명색이 담임선생이 삥땅을 해먹다니요. 이 무슨 황당한 일입니까.

 

그럼에도, 당시의 까까머리 중학생은 거기에 아무런 의문을 느끼거나 반감을 갖지 않았습니다. 많고 많은 없는 집 애들 중에 나를 추천해줘서 15만원이란 거금을 얻게 해준게 저는 그저 감사했습니다. 솔직히 그중에 절반을 떼어갔어도, 여전히 꾸벅꾸벅 감사합니다를 연발했을 겁니다. 실지로 당시에 저는 선생님이 너무너무 감사했었습니다.

어이없지만 그랬습니다.

 

가난한 집 아이에게 지급된 장학금을 담임선생이 떼어먹는 나라.

 

사실 이게 대한민국이었습니다. 독재자의 나라, 쿠데타 군인들이 폭력으로 집권한 나라. 권력자의 감시에서만 벗어나면 어떤 범죄도 가능한 나라, 어른이 아이를 수탈하고, 교사가 학생을 수탈하고, 아이는 또 다른 어린 아이를 학교에서 삥 뜯고, 학교에서 삥뜯긴 아이는 길에서 자신보다 더 약한 아이를 만나 원금을 회수하는. 국가권력의 최상부부터 골목길 동네 아이들의 세계에서까지 이르는 삥뜯기 국가시스템.

 

이게 대한민국이었습니다.

 

교사의 체벌과 구타를 사랑의 매라고 배웠습니다. 그렇지만, 요상하게도 좀 사는 집 친구들에게 휘두르는 매는 항상 뭔가 강도가 약해보였던 시절이었습니다. 과학적이고 이론적으로 팩트를 전달하기가 참 어렵지만, 어쩜 그건 없는 집 애들의 현실 왜곡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사랑의 매는 그 매질의 강도가 항상 달라보였습니다. 왜 이상하게도 가정방문은 사는 집 친구들에게만 가는 것인지 그리고 왜 목욕탕을 하는 친구네는 담임선생님이 세 번이나 가정방문을 하시는 것인지, 왜 저 많은 선생님들 중에 이놈에 달동네를 올라오려는 선생은 없는지 알 수 없는.

 

선생님들이 달동네를 무슨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쯤으로 여기는.

이런 게 대한민국 학교풍경이었습니다.

 

바뀌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바뀌어 왔습니다.

 

교직원노동조합이 생기며 교사들이 바뀌어 왔고, 학부모 단체가 생겨가며 부모님들이 바뀌어 왔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며, 더러는 시끄럽게 더러는 조용히 바뀌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러그러한 역사의 과정에 우린 서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약간 부족하다고 봅니다.

 

우리 학생들이,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부당한 것들에 대해 부당함을 인식하고, 행동하고, 저항할 수 있도록 사회 여건이 만들어 져야 한다고 봅니다.

 

부모님에게 이르는 게 아니라,

선생님이 해결해주시길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는게 아니라,

직접 나서서 선생님에게 그리고 어른들에게 그거 안됩니다” “부당합니다말하는

아이들의 나라. 그런 학교가 이제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나서서 잘못된 제도와 잘못된 관행에 비판하고 항의할 수 있는 체계적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여전히 학교내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각종 형태의 차별과 폭력 그리고 혐오와 소외를 줄여나갈 출발점이 아닐까요?

 

학생인권조례 하나로 이 모든 게 이루어지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인권의식을 향상시키고, 학교를 살아있는 인권교육장으로 만들 제도적 밑바탕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불법과 폭력과 차별과 부당함이 강요되지 않고, 반대의 목소리가 합리적인 소통과 토론으로 연결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그게 여기 이 조례안에 담겨있는 정신이라고 봅니다.

 

세상은 바뀌어야 했고, 바뀌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이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부산광역시 학생인권 조례안이 무사히 의회를 통과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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